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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gypt

올드카이로(2013년 3월 7일)

오늘도 역시 야간버스로 카이로 출발 아침 7시가 조금 못되어 카이로 람세스 역 주변에 도착했다.

카이로 시내 지리를 잘 모르시는 두현형님네 가족과 종현이를 얄라비나에 모셔다 드리고...

전날 수경이가 묵고 있는 Aussie Hotel로 향한다.

한인민박이 싫은건 아니지만 현지민박도 나에겐 좋은 경험이 될것 같아 전날 수경이에게 부탁을 했었는데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싱글룸에 머무를 수 있게 되었다. 아침 포함해서...ㅋㅋ가격은 90파운드(약 1만5천원)

야간버스의 피로 남아 있어 체크인하고 조금 쉬었다가 수경이와 올드카이로를 가기위해 밖으로 나서는데

얼마가지 못해 아주 신기한 건물 두개가 눈에 들어왔다.

이슬람을 상징하는 모스크와 이집트 콥틱교 건물 두개가 나란히 같이 있는게 아닌가...

국민의 95%이상이 이슬람을 믿는 이집트에서 두 개의 건물이 같이 나란히 있다는 것이 나의 눈엔 참으로

신기하게 보였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타흐리르 광장주변으로 가는 순간 곳곳의 건물벽에는 2년전 민주화 혁명 당시의 잔재들이

남아있었고 타흐리르광장에는 이집트 혁명 2주기를 기념하는 조그마한 시위들이 보였고 광장 가운데에는

아직도 천막을 치고 그안에서 상주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보였다.

 

이집트의 민주화 운동 아니 중동에 불고 있는 민주화 운동, 자유, 저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알렉산드리아에서 보았던 시민들의 시위모습과 카이로에서 보는 저들의 모습

나 또한 역시 데모가 한참이던 1980년 말 1990년대 초 고등학교 시절 대학생 형들의 민주화를 위한 모습들을 많이

보아 왔다.

하지만 난 그때 대학 입시를 앞둔 상태였었고 전경들과 함께 뒤엉켜 싸우는 그들의 속에서 집으로 가기위해 최루탄

냄새를 맞으며 집으로 가야만 했을 때 그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그들이 싫어했다는 기억이

떠오른다. 

어째든 그 모습을 뒤로 하고 수경이와 올드카이로로 향한다.

올드카이로 이집트 기독교의 역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콥틱교의 심장이다.

이집트의 원래 종교가 유대교의 한분파인 기독교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많이 없을 것이다.

이슬람 종교는 당시 비잔틴 제국과 이집트사이에 격렬한 종교분쟁이 일어났을 때 바그다드의 이슬람교 세력이

혼란을 틈타 이집트의 정권을 쟁취하여 이슬람교가 전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때가 7세기 였던 것이다.

올드카이로는 그런 초기 콥틱 기독교와 수도원 초기 이슬람문화가 함께 어울려져 있는 이집트 최초의 도시인 것이다.

지하철 1호선 Mar Girgis역에서 내리자 마자 바로 보이는 성 죠지(st. George)교회 출입구가 보인다.

솔직히 종교에 그렇게 관심이 없는 나로써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책들을 보아야 했고 이집트역사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야만 했었다.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단순히 서술적으로만 기술 한다면 난 이집트란 나라를 올바르게 보지 못하고 있단 기분이

들어서 일까...

여하튼 이곳 올드카이로를 천천히 돌아 다니면서 이집트의 찬란한 문화와 당시의 그들의 모습들을 상상할 수있는

기분이 들어간다.

성 죠지(st. George)교회 담장을 따라 걷다보면 바빌론의 성채가 눈앞에 보인다.

* 콥틱 박물관

내부가 밖에서도 훤히 보이고 굳이 돈들이고 들어갈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여 그냥 밖에서 대충 눈으로 구경만 하고

그냥 눈앞에 보이는 길따라 그대로 걸어간다.

바빌론에 대해서 기술하자면 원래 세군데에 있었다고 한다.

이라크 지역의 바빌론 제국의 수도인 바빌론과 로마의 바빌론, 이집트 올드카이로의 바빌론이다.

올드카이로의 바빌론은 크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연합군을 제패한 로마의 옥타비아누스 로마의 황제가 된 후

이집트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집트 곡창 지대의 꼭지점에 해당하는 바로 이곳에 성채(城砦)를 만들었으며

그 후 로마의 트리아누스 황제가 개축 하였고 AD395년 아르카디우스 황제가 재개축 하였다. 

현재의 성채 모습은 당시 거대한 성채의 일부분 이었으며 지표면은 지금보다 약 6m정도 낮았다고 한다.

그만큼 나일강의 범람으로 상당기간 동안 퇴적이 이루어 졌다는 것이다.

비잔틴 제국의 영토였던 7세기 이집트를 정복한 아랍장군은 "아므르 이븐 알 아스(Amrr ib n al-As)" 였다.

아므르는 639년 시나이 반도의 지중해변 도시 "알 아라쉬(오늘날의 가자지구 인근)"에 도착했고, 640년에는 카이로

인근 고대도시"헬리 오폴리스"에 진출했다. 그러나 원정대장 "아므르"장군은 640년 9월에 포위를 시작 무려 7개월이

지난 641년 4월에 성을 함락 시킬 수 있었다.

바빌론 성의 함락은 이집트의 이슬람화를 가속 시켰다. 같은 기독교국인 비잔틴 제국이 이집트를 점령하였으나

그들은 콥트교를 이단으로 규정하여 심한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무슬림 아므르는 교회의 자유를 보장하며

이슬람으로 개종을 유도 했다.

이러한 초기 이집트의 기독교와 비잔틴 제국의 기독교 그리고 무슬림에 관한 세부적인 기술을 더 하고싶으나 내용이

너무나 길어질것 같고 여행 수기에는 적합 하지 않아 이정로만 간단히 기술하고 넘어간다. 더 깊은 역사적인 내용을

알고자 한다면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를 여러분들에게 권한다.

바빌론의 성채를 지나 조금만 가다 보면 공중교회가 보인다.

기원전 수백개의 교회가 있던 이집트에 지금은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콥틱 지역은 이집트에서 유일하게 결실을 맺은

기족교의 중심지라 할 수있다.

성모 마리아를 모신 공중교회는 로마 보루 남쪽문의 돌출부 위에 지어져 공중교회라 불리게 되었다.

교회 정문을 장식한 모습을 자세히 보면 매우 아름다운 조각들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냥 보면 아주 수수하게 보일지 모르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주 섬세한 조각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야자수 나무같은 것이 보이며 길쭉하게 뻗은 길로 되어 있다.

교회로 올라 가는 계단은 24개의 계단은으로 되어 있는데 처음 12계단은 유대민족의 12부족을 가리키며 

다음 12계단은 12제자를 의미 한다고 한다.

계단을 올라 교회 입구를 보면 이집트 "알 자이툰"성당에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것을 액자로

만들어 가운데에 놓여 있는 것을 볼 수있다.

본당 출입문의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그저 대단하단 생각 밖에....

평일 이라 그런지 그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있지 않아 여유있게 이곳을 볼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교회 내부에 들어 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마음이 견견 해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비록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이곳에서 많이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한국의 교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이 곳의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싶다는 생각마져 든다.

다시 밖으로 나와 반대편 길로 걸어 본다. 가다 보니 지하로 내려 가는 길이 보인다.

* 한국 부산의 보수동 책방같은 분위기의 좁은 길(아기예수 피난교회로 가는 길)

당시에는 몰랐었는데 글을 쓰기 위해 이곳에 대해서 알아 보니 이 좁은 길이 아기예수 피난교회로 가는 길이었다.

좁을 길을 가다 보면 아주작은 교회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이는데 이곳이 아기예수피난교회라고 한다.

* 아기예수피난교회

그냥 보면 일반 가정집의 입구같은 느낌 들어가보니 조그마한 예배당과 그속에서도 지하로 내려가는 길

지하로는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우편엽서나 안내 책자의 사진으로 보니 굉장히 복잡한 미로같이

되어 있는 모습에 당시 아기예수의 험난한 길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아쉽게도 촬영이 불가 하여 사진으로 올리지 못한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렇게 올드카이로의 모습을 뒤로한채 수경이와 카이로에서 부유한 사람들이 산다는 maadi로 향한다.

올드카이로에서 지하철로 2~3정거장 떨어진 곳이다.

이곳을 지하철 역 사이를 두고 카이로의 부의 극과극을 보여 주는 곳이다.

 *  maadi의 부촌 한국과 별반 다른 것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다.(왼쪽 김가네 한국식당 극장가)

* 사진의 왼쪽이 극빈자들이 모여 사는 곳 오른쪽이 부촌이다.

이집트의 빈부의 격차를 적날하게 보여주는 곳중의 한곳이다.

한쪽은 정말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 또 다른 한쪽은 빈민가의 모습을 재대로 보여준다.

수경이와 함께 그동안 카이로에서 보지 못했던 재대로 된 도시같은 곳 스타벅스에서 커피한잔의

여유를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저녁식사를 종원, 두현형님과 저녁약속을 하였으나 형님의 누적된 피로로 인하여 종원이와 간단히 캔맥주만 마시고

난 다시 숙소로 가려는 순간….(안주로 양고기 ㅋㅋㅋ)

갑자기 도키(dokki)로 찾아온 이집트 여동생 하늘이와 그녀의 친구들과 잠깐 담소를 나누며 몇장의 사진을 찰칵….ㅎㅎ

* 이집트 한국대사관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김하늘(Radwa)와 학생들

숙소에 도착해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고 있는데 휴게실에 있는 수경과 함께 늦은시간동안 여행에 대한 이야기와

종교 서로의 가차관과 삶에 대한 깊은대화를 나누게 된다.

시와사막에서 이후 두번째 대화이다.

처음 카이로에서는 수경이에게 별다른 느낌이 없었지만 시와사막에서의 대화이 후 이 친구에게 알 수 없는 그 무언가가

나에게 다가 오는 것 같다.

솔직히 배냥여행을 와서 서로가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친구와 이렇게 이 머난먼 곳에서

사적인 대화를 하고 있는 나 자신도 참 이해 하기 힘들었지만 점점 이 애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건 무엇일까..

그 애와 나 비슷한 20대의 환경 하지만 전혀 다른 과정 너무나 다른 결과 나의 32살모습 지금 이 애와는 전혀 다른 삶의

길을 걸어 가고 있었다.

난 처절한 삶의 경쟁속에서 한발한발 나아가고 있었으며 나름의 성취도 있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친구와의 대화속에 그동안 내가 잊고 있었던 닫아 두었던 내속의 또 다른 나가 조금씩 드러나는 것도 모른체

새벽까지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사람은 저마다 각자의 삶에서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고있다.

수많은 사연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에 수경이와 이곳 이집트에서의 만남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배우게 한다.

과연 그녀의 이 여행에서 무엇을 보고있는 것일까...

얼마되지 않은 동행을 통해 그녀의 삶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다가온다.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이들과 만남을가지며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할 때 더 많은

행복을 느끼는것같다.

이 순간 좋은사람들과의 만남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게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나 자신을 또 다시 돌아볼수있는 기회

항상 초심의 마음 어린시절 방황했었던 그때의 기억을 항상 생각하자.

비록 수경이의 깊은 마음을 나의 삶에 비추어 볼때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녀의 삶은 존중받아야 될 것이다.

그녀에게 있어 신앙은 삶의 모든 것 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또 하루 이집트의 밤은 깊어가고......

 * 타흐리르 광장의 일몰